애연(哀緣) - 가련하고 슬픈 인연
열두 살의 윤희연은 살을 에일 듯 차가운 세상에 홀로 남겨져 열 살 이애숙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은 아름답게 자란 그녀에게 의순공주로 살으라 떠밀었다.
“그럼 이제 제 이름은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여섯 해 전까지는 윤희연이로 살았고 오늘까지는 이애숙으로 살았습니다. 그럼 이제는 어떤 이름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 여인만을 바라보며 오직 제 것이 될 방법을 찾던 사내, 해는 속절없이 그녀를 놓아야 했다.
“진정 너를 잃어버렸구나. 내가. 이 미련한 내가. 시일을 고르다가, 명분 따위를 찾다가… 내가 너를 잃어버렸다.”
그녀를 힘든 세상으로 떠밀었던 조선은 어떤 모욕을 겪어도 절대 죽어서는 안된다고 압박했다. 살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를 가둬버렸던 의순이, 애숙이, 희연이 마침내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애썼던 해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며 애처롭게 그녀를 붙들었다.
미처 가리지 못하고 들켜버렸던 열일곱의 희연이를 발견했을 때부터였는지, 제 앞에서 주저앉아 울면서 애숙이가 아니라던 그때부터였는지는 몰랐다. 저도 모르게 당겨 안아버렸던 연둣빛의 희연이는 해의 마음을 뜨겁게 흩트려 놓았었다.
“생의 의지는 너로 인해서만 가질 수 있는 나란다. 네가 없으면 종일 아무것도 못 하는 나란다. 그러니 착하고 무른 네가 나를 좀 돌아봐다오. 제발 나를 좀 받아다오.”
그렇게 욕심내던 이가, 도망치느라 애태우던 이가, 밤에 몰래 깨어나서는 제 얼굴을 살피고 행복한 기운을 숨기지 않으니 다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늦게 이뤄졌으니 남들보다 함께할 시간도 짧겠지. 그러니 그저 하루하루를 알차게 아끼고 은애하며 살자. 애태우지 말고. 응?”
세상에 존재했으나, 오욕의 역사라 밀려나버린 조선 효종의 왕녀 의순공주.
의순공주가 되어 살아간 윤희연과 그녀만을 바라보는 해가 만드는 동화같은 이야기.